# 가출했다 일주일만에 들어온 심정이다.
왠지 머리 긁적이며 쑥쓰러우면서, 일말의 가책과 회한이 느껴지면서, 이제부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마음이랄까?
글쓰기가 뜸했던 건 잠시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눈에 담고, 느끼고, 즐길 꺼리들이 널려있다 보니 메모장에만 생각날 때마다 끼적일 뿐 그만 이곳에 글쓰는 타이밍을 번번히 놓쳤다. 왠지 이마저도 변명같이 들린다. 알고 있다.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은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쓰고 읽고 쓰고 읽고 매일 매일 꾸준히, 끈기 있게 하다보면 어느새 탄탄한 근육이 만들어지는 일임을.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쓰다 보면, 읽다 보면 새로운 생각 꺼리, 쓸 꺼리들이 자꾸자꾸 생기겠지. 아자아자!
비움과 채움의 시간...여행
주부라면 여행을 떠나기 전 잊지 말고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냉.장.고 정.리!
나흘간의 짧은 외출이라도 그 사이 상할 수 있는 재료들, 수박, 채소, 나물 반찬 등을 다 먹어 치우거나 주변에 나누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냉장고를 맹신했다가 ‘아끼다 * 된다’는 어른들 말씀을 뒤늦게서야 떠올리고 후회하는 일을 자주 겪다보니 자연스레 체화된 행동이다.
냉장고 정리와 더불어 주부들이 잘 아는 용어가 있다. 바로 냉장고 파.먹.기!
뭬야? 냉장고를 먹는다고??라고 남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냥 지은 말이 아니라 다 뜻이 있는 말이다.
새로운 재료를 마트 가서 계속 사는 게 아니라 냉장고에 뭐가 들어있나 파악하고 그 재료들로 요리를 하는 것. 있는 것부터 활용해서 냉장고를 가볍게 비우고 정리해 가는 것을 일명 ‘냉장고 파먹기’라고 한다.
비움의 중요성, 소중함, 간절함을 주부들은 일상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바빠 죽겄는데...머리 복잡해 죽겄는데...어딜 떠나냐고들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본인은 안다. 온갖 세상에 죽겠는 일들이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되는 않는다는 것을.
포화 상태일수록 비우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냉장고가 문이 안닫힐 정도로 터지려고 하는데 계속 사다 채우려고만 하면 될까? 냉기가 터지기 일보 직전인 문틈으로 슬슬 새어나가 결국 안에 있는 음식들까지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법이다. 비우면, 냉장고 안이 더 잘 보이고, 어떤 재료로 어떻게 요리할 지가 자연스레 그려지고, 어떤 새로운 재료를 사야할 지가 정리된다. 우리 마음도 잡다한 감정들로 꾸역꾸역 채우지 말고, 한번쯤 시원하게 비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비우면 세상이, 내가 처한 상황이 더 잘 보이고, 새로운 울트라 파워 에너지로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비워진 몸과 마음에 새로운 자극, 충격을 더하면 어떨까? 오마이! 언빌리버블!! 툭 건드리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세상이 새로워 보이고, 그 새로운 걸 보고 느끼고 먹어보고 즐겨보며 내 안이 무한 긍정 에너지로 가득차게 된다. 이런 채움은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우리 속을 MSG 첨가하지 않은 건강식으로 채운 것처럼 속이 편안하다. 수많은 신선한 내적 충격 속에 내가 사는 곳, 내가 마주한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고, 비로소 잊었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내적 충격은 평소 아무 관심이 없었거나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나라나 지역을 여행할 때면 더 크게 다가온다. 그 내적 충격이 실망에서 온 것이든, 놀라움에서 온 것이든간에 충격파가 큰 만큼 채움의 크기 또한 그만큼 커진다.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비움과 채움의 경험, 여행을 통해 없는 것을 바라는 욕망의 부질함과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해 하는 소중함을 두루 느낄 수 있다.
서해를 지나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는 5000여 km 여행길.
비움과 채움의 기쁨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랑하는 가족, 나의 여행 동지들이 옆에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 8.28 수요일 말레이시아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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