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의 시선 (ft. 몽돌해변)
고군산군도를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일행 중에는 저처럼 난생 이곳이 처음인 사람도 있었고, 반면에 여러 번 찾았던 유경험자도 있었죠. 항상 그렇듯 와본 사람이 다녔던 경로대로 다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습니다. 여섯살 서울 꼬맹이 짱짱이가 모래를 질색하며 싫어하는 겁니다. 야심차게 선유도 해수욕장으로 안내했던 사람이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일행 누구 하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또 다른 해변을 찾아 나섰습니다. 선유도 해수욕장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몽돌 해변' 낙점! 그런데 가는 길이 대략난감이더라고요. 반대편 차를 마주치면 상당히 난처해질 정도로 좁은 외길을 따라 힘겹게 힘겹게 들어갔어요. 안내판의 화살표 방향도 애매모호한 그 길의 끝에서 차를 멈추고 해변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의 시선 아래 우리가 찾던 해변. 동글동글 돌들이 쫙 깔려 있는 몽돌해변이 있는 겁니다. "와~!" 외마디 길고 깊은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말발굽처럼(나중에 지도를 살펴보니 스퀘어 넥라인 모양에 더 가깝네요) 야트막한 산과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해변. 그 해변에는 형태도, 새겨진 문양도 모두 제각기 다른 몽돌들이 보석처럼 깔려 있었습니다. 소수의 사람만 찾는 곳, 그래서 더 조용히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히든 플레이스'였던 겁니다. 이곳을 찾는다면 작은 캠핑 의자를 바닷물 가장자리에 놓고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눈을 한번 감아 보세요. 철썩철썩 파도 소리와 함께 이윽코 들리는 신비한 소리가 있습니다. 바로 차르르르~?이라고도, 쏴아아아악~?이라고도 들릴 수 있는 몽돌 굴러가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경쾌하던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녹음을 했는데, 그 소리가 아니에요. 기술이 점점 좋아져도 자연 그 자체를 담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듯 합니다. 마치 파도가 "나 왔어~"하고 돌들을 철썩 때리면 함께 저만치 따라가다 멈추고 또 다시 동행해 돌아왔다 또 저만치 따라가는 것 같더라고요. 몽돌이란 이름처럼 참 귀여운 광경이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파도와의 밀당 덕분에 탄생한 동글동글함, 그 과정에서 새겨진 신비로운 문양들. 새로운 이 장소와의 만남이 하나하나 귀하게 여겨지더라고요.
만약에 몽돌해변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고, SNS를 뒤져보고 왔더라면 어땠을까요?
분명히 눈 앞에 자연을 보기 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옆 사람에게 풀어 내거나, SNS에서 본 사진 포즈를 따라하기 바빴을 겁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시나요?
천진한 어린 아이가 세상을 처음 경험하 듯 청연한 눈으로 여행지를 경험하고 느껴 보세요. 분명히 오감이 열리고 새로움이 물밀 듯 들어오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비우는 여행
"산은 석양의 여린 빛살이 나뭇가지와 잎새들 사이에서 사위어지면 잠이 들었고,
먼동이 트기 전 새들의 부산스런 지저귐을 따라 잠에서 깨어났다.
산이 깨어날 즈음이면 언제나 안개는 산자락을 덮고 있었다. 산을 포근하게 잠재운 이불처럼."
정말 멋진 표현이죠? 똑같은 자연을 보고도 이렇게 누구나 공감을 할 만큼 생생하게 비유를 하다니...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을 때마다 감탄의 연속입니다. 작가는 자연을 마주하며 얼마나 가슴 깊이 느꼈을까요? 그야말로 흠뻑 젖어 바라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표현이라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철저하게 사전 조사를 합니다. 어느 곳이 경치가 죽인다더라, 어느 곳이 맛있다더라, 어느 곳이 유명 연예인이 왔다 갔다더라 등등. 정보 제공자의 시선대로, 경험대로 현장을 찾아 사진을 찍고 그 다음 유명 장소로 발길을 돌리기 일쑤니 몸과 마음이 지치는 피곤한 여행이 되는 거예요. 혹은 열심히 먹어보고, 사진 찍고 뭔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얻어가려는 여행이 되다 보니 이 또한 피곤해 지는 겁니다.
어떤 곳이 있는지 위치와 성격 정도만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그냥 그대로 떠나보면 어떨까요?
어떠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의 눈과 귀는 아는 사실만을 찾고 확인하는 일에 급급하게 되지만,
전혀 모르고 있다면, 우리의 오감은 모든 것에 열려 있게 되는 법이거든요.
우리 모두에게 여행은 처음부터 비워진 여행, 우리의 선입견을 비우는 여행, 그래서 나만의 새로운 느낌과 감상으로 채우는 여행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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