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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예술 기행 (feat. 르네 마그리트)

상식에 대한 도전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았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디지털화 전시를 눈여겨 보고 있었거든요. 혼자 하는 여행도 좋지만 가끔은 같이 생각을 나눌 벗이 있으면 더 좋은 법. 저 못지 않게 매일매일 꿈틀대는 삶을 사는 육아 동지와 함께 전시장에 갔습니다. 

 

르네 마그리트. 대표작들이 워낙 영화나 광고, 만화, 앨범 등에 많이 쓰여 눈에 낯설지 않았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갔던 터라 이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무엇보다 컸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그가 한 말이 적혀 있었어요.

 

"나에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상식에 대한 도전... 그렇잖아도 오늘 새벽부터 책을 읽으며 익숙함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내일로 향하는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터라 이 문구는 절대 허투루 읽히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한 사람이라면 이 사람의 삶은 어땠을까? 그의 작품은 어떨까? 기대는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화가가 살아온 길을 쭉 살펴보니 르네 마그리트의 부모님은 둘다 화가가 아니었어요. 아버지는 양복점에서 옷을 짓는 일을, 어머니도 그 계통의 잡무를 하셨다고 적혀있더라고요. 그러다 10대 중반 인생 최대의 사건을 맞이하는데 우울증이 심했던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다. 10대 때 그 어마어마한 일을 겪은 거죠. 몇 년 후 회화 수업을 받으며 그림 세계에 입문했는데... 추측컨대 어머니의 빈자리, 헛헛한 마음을 그림으로 채우려 애쓰지 않았을까 혹은 우연히 만난 그림이 그 상실감을 채워주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술의 길은 춥고 배고픈 길. 그림만 그리면 참 좋으련만, 벽지 회사나 광고 회사 디자이너로 투잡을 뛸 수 밖에 없는 생활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붓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다 20대 중반, 익숙하지만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물들이 캔버스 위에 그려진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을 보고, '초현실주의'에 깊이 빠지게 됐습니다. 그의 작품 정체성이 이때부터 확고해진 셈이죠. 여타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다른 점은 그들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무의식의 세계를 다루는 게 아니라 현실의 세계와 각종 오브제를 탐구하고 해체해 분석하는 형식으로 다뤘다는 겁니다. 누구나 익숙한 물건들이었기 때문에 관객들도 좀 더 친숙하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미술의 세계를 감히 깊이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개성이 뚜렷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죽는 날까지 고민하고, 선보인 작가의 열정과 의지만큼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됐습니다. 

 

상실, 가난, 무시, 비난 등의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50대 중반 비로소 뜰 때까지도 광고 일을 병행해야 했을 만큼 궁핍했고, 벨기에에서 인정 받지 못해 프랑스로 갔다 다시 벨기에로 돌아오는 등 어디서도 인정 받지 못한 삶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붓을 꺾지 않았던 비결은 뭐였을까요? 

 

계속 그리고 싶은 욕구, 샘솟는 창의력,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끈기와 열정, 10대때부터 죽을 때까지 예술 동지이자 벗이 되어준 아내 조르제트와 친구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인생은 내게 무언가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

 

계속 그리고 싶은 욕구도 결국 그리고 또 그리고, 끊임없이 그렸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였지 않았을까요? 물도 계속 붓다보면 어느 순간 꽉 차서 바깥으로 흘러 넘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인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으로 옮겼던 화가. 악조건이 오히려 그를 강하게 만들어 더 큰 가치로 꽃피운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삶은 오늘 제게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작품

연인들(1928) / 천에 덮힌 어머니의 시신을 목격했던 사고와 연관짓는 해석도 있고,  가장 가까운 연인에게조차 자신의 모든 걸 들키지 않으려 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있고 다양하다. 난 개인적으로 부부 사이도 이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아니면 말고...

 

작품 위에 적혀있던 작가의 말 "우주에는 달이 한 개뿐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달을 본다"
사람의 아들(1964) / 죽기 3년 전 작품. 그는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만 감추어진 것, 확연히 보이는 것에 대한 개념을 탐구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대상은 항상 어떠한 것 뒤에 감추어져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아무리 사과에 가려졌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미지의 배반(1929) / 파이프 아래 문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맞다. 이건 이미지일뿐 피울 수 있는 진짜 담배는 아니다. 
가장 뭉클했던 사진 /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우연인듯 필연인듯 만나게 된 여인. 1차 대전으로 헤어졌다 7년 만에 재회한 둘은 결혼해 평생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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